[스크랩] 이슬람의 기원 및 교리 주요내용
▶ 이슬람의 기원 및 교리 주요내용
전 세계 인구 약 65억명 가운데 약 19.2%인 13억명 정도가 이슬람교인으로 대략 6명중 1명이상이 이슬람(무슬림)인인 셈이며,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가 48개국이나 되며, 유럽이나 미국에도 상당수의 무슬림이 살고있는 실정입니다.
그 기원은 서기 610년경 예언자 마호멧 40세무렵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근교의 히라 동굴에서 사색, 참선을 하던 중 가브리엘 대천사를 통해 하느님(아랍어로 '알라')의 계시를 받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후 수차례에 걸친 계시는 모두 114장에 이르는 꾸란(코란)으로 완성되는데 내용을 보면 천지 창조와 인간의 창조, 이후 하느님으로부터의 계시에 대한 내용과 인간 생활 전반에 걸친 가르침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슬람이란 명칭은 어원적으로 '평화로움'을 뜻하는 말로 이슬람의 근본적인 가르침이 현세에서 하느님, 알라의 가르침대로 행동하여 내세에서 평화로움을 얻는데 있음을 뜻합니다.
이슬람의 기본적인 교리는 '오주, 육신' (五柱 六信)으로 다섯가지 의무와 여섯 가지 믿음을 반드시 지켜야합니다.
오주는 1. 신앙선언, 2. 예배, 3. 희사(구빈세), 4. 단식, 5. 성지순례입니다.
1. 신앙선언은 이슬람 신자가 될 때 "하느님 알라외에 신은 없고, 마호멧은 그 사도임을 증언합니다."라는 내용을 증인들 앞에서 선언하는 것으로 이 를 통하여 무슬림(이슬람 신자)가 됩니다.
2. 예배는 하루 다섯 차례 (새벽, 정오, 오후, 일몰, 밤) 정해진 시간에 메카 를 향하여 간단한 형식으로 깨끗한 장소 어디서나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 전에는 반드시 몸을 깨끗이 씼어야하며 이를 '우두'라고합니다.
우두를 하지 않은 예배는 무효입니다.
3. 희사는 자기 수입의 40분의 1 (생활에 필요한 최소 경비를 뺀 수익금의 1/40)을 반드시 가난한 사람에게 전해야합니다.
4. 단식은 이슬람력 (음력의 일종)으로 매년9월인 '라마단'달에 매일 새벽 예 배로부터 저녁 예배까지 즉, 해가 떠있는 시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단식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저녁 예배 후에는 허기를 면할 정도의 소량의 식사를 허용합니다. 절약된 음식과 물자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단식을 통 해 자신의 신앙을 더욱 굳게한다고 합니다.
5. 성지 순례는 일생에 한번 순수한 자기 비용으로 메카를 순례해야합니다.
순례는 이슬람력 12월인 둘-핫즈(Dhul-Haji)에 순례 기간 중해야 합니다.
* 5주를 5개 기둥이라고도 하는 데, 시아파는 수니파의 5개기둥외에 지하드 (성전)와 선행을 추가합니다. 이슬람 영토, 신념, 기구를 보호하기 위해 성전에 나설 수 있다고 한 지하드 개념 때문에 시아파가 더 과격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럼 시아파는 7주6신이 되나요?
육신은 1. 하느님, 2. 천사들, 3. 경전들, 4. 사도와 예언자들, 5. 정명(定命), 6. 최후 심판일을 믿는 것입니다.
1. 하느님 알라는 유일신으로 천지를 창조하고 우주를 운영하는 절대자입니다.
2. 천사들이라함은 하느님을 보좌하고, 인간을 돕는 성스러운 존재이나 이성을 갖지 못하며 하느님 명을 충실히 따를 뿐입니다. 천사의 존재와 그 기능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3. 경전들은 태초 이래 유일신이 인간에게 전한 말씀들을 모두 일컫는데 이 중에는 구약, 신약, 코란이 모두 포함됩니다. 다만 이슬람에서는 코란을 절대적인 경전으로 믿고 다른 경전들에 대해서는 계시의 사실과 그것을 전한 예언자들의 존재를 믿지만, 구약이나 신약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코란 이전의 경전들이 인간의 편의에 의해 선별되어짐으로 변형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코란이 완벽한 형태의 경정으로 다시 전해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코란에는 구약과 신약의 내용들 중 많은 부분이 언급되어 있기도 하답니다.
4. 사도와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로 신의 말씀과 예언을 인류 에게 전했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5. 정명은 절대신이 인간에게 정한 원칙과 주어진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 많은 경전과 예언들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고 인류와 우주의 모든 일들이 절대 유일신의 뜻에 따라 운영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6. 최후 심판일이 언젠가 오고 인간의 선악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나누어진 다는 것으로 일면 기독교의 최후 심판일과 개념은 같지만 이슬람에서는 예수 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관계로 예수를 통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 고 단지 개인의 신앙의 정도와 선악을 얼마나 행했는지에 따라 구원과 징벌 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이슬람의 뿌리는 역사적 측면에서는 마호멧이 코란을 계시받고 포교를 시작한 610년 경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슬람적 측면에서는 그들이 믿는 절대신 알라 -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으므로 이슬람은 태초부터 존재해 왔다고 한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과 그 어머니 하갈을 사막으로 내쫒음에서 시작된 것은 그리스도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아랍족의 시작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두 자손 이스마엘과 이삭으로 부터 아랍인과 유대인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성서적 인종의 시작입니다.
이슬람은 유일신 알라 외에 신은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도 마호멧도 인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단지 하느님의 경전을 인류에게 전한 사도라는 것이 이슬람의 견해입니다.
▶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차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예수에 대한 해석과 그에 따른 구원의 개념입니다. 먼저, 이슬람에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와 관련된 꾸란(코란)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
'말하라 그분은 유일하시며, 전지전능하시고, 낳거나 낳아지지 않으시며, 다만 스스로 존재하신다.'(코란 제112장 '쓰라툴 이클라스' (유일신의 장) 내용).
하느님은 오로지 스스로 존재하시고, 유일하신 존재로서 '하느님' 외에 다른 일체의 개념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성부, 성자, 성령'의 세가지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온전한 하나의 개념으로 존재한다고 하여 이슬람에서 '삼위일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낳거나 낳아지지 않은 존재'이므로 하느님은 '아들'이라는 개념은 없는 것이고, 따라서, '예수'는 인류에게 하느님의 계시를 전한 '선지자이며 예언자'로서 이슬람에 존재합니다. 이슬람에는 어떠한 선지자도 하느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으며, 인간 그 자체로서 인정됩니다. 물론 이슬람에서 예수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하나님의 총애 받은 예언자라는 것입니다.
코란에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게 권능을 주어 능력으로 그를 보호케 하였노라.' (2:87)
"...마리아여! 하느님께서 너에게 말씀으로 복음을 주시니 마리아의 아들로서 그의 이름은 메시아 예수이니라..." (3:45)
"성서의 백성들이여 종교의 한계를 넘지 말며 하느님에 대한 진실 외에는 말하지 말라.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이자 하느님의 선지자로서 마리아에게 말씀이 있었으니, 이는 주님의 영혼이었노라. 하느님과 선지자들을 믿되... (4:171) 등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기적적 탄생이나 계시와 여러 기적을 행한 것들은 이슬람에서도 동일 합니다. 다만,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부분은 좀 다릅니다.
하느님의 가장 사랑받는 사도로서 그런 박해를 피하여 하늘로 승천했다는 것입니다. 즉, 죽어서 부활한 것이 아니고 산 채로 승천했다는 것이며, 십자가의 예수는 예수를 닮은 사람이거나 허상이라는 견해입니다.
또 하나, 그리스도교와 크게 다른 것은 구원에 대한 부분입니다.
단적으로 이슬람은 원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저지른 죄악은 그들 자신이 에덴 동산에서 방출된 것으로 그들 자신에게서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슬람은 모든 인간은 선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탄생의 순간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 순수한 영혼을 얼마나 깨끗하게 간직하느냐에 따라 내세의 축복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 영혼을 깨끗이 지키는 방법이 이슬람에 있다는 것이죠. 원죄가 없으므로, 그리고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고,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서 이슬람은 예수를 믿어야만 원죄에서 벗어나 구원 받는다는 그리스도교와 많은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 수니파와 시아파
초기 이슬람교는 분파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마호멧 사후 후계자 선정 문제와 율법서인 코란 해석에 따른 견해 차이에 따라 여러 분파가 생겨났습니다. 대표적인 분파가 수니파, 시아파, 수피파인데, 전체 무슬림 중 88%정도가 수니파이고, 시아파는 10%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2%를 다른 분파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니파는 전 세계 무슬림의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각지에 골고루 퍼져있는 반면, 시아파는 이란, 이라크, 바레인, 레바논, 오만 등 몇 개 국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때로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양상을 보면, 단순한 종교 파벌이라 하기엔 지나치다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도 천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말이지요.
같은 신을 섬기고, 같은 율법을 따르는 두 종파의 천 년 갈등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요?
▶ 수니파와 시아파, 역사의 시작
서기 632년 마호멧의 죽음으로 이슬람 세계는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마호멧에겐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으며, 그를 대신할 분명한 후계자 선정도 하지 않을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통성이라는 화두가 이후 이슬람 역사 천 년을 지배하게 되지요. 마호멧 사후 후계구도는 피로 얼룩져 있고, 그에 따른 파벌 갈등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수니파는 마호메트 이후 아부-바크르, 오마르, 오트만, 알리 이븐 아비의 4대 정통 칼리프와 이후 칼리프들의 정통성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 데. 시아파의 경우 마호메트의 사위이자 충실한 추종자였던 알리 이븐 아비만을 정당한 메시아의 후계자로 인정합니다. 칼리프의 자격 요건에서도 서로 견해차이가 있지요. 수니파는 마호메트의 혈통이 아니어도 그의 부족인 쿠라이시족 출신이라면 무조건 칼리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는 반면, 시아파는 칼리프의 정통성은 마호멧의 혈통에 의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봅니다.
종파 간 견해 차이 속에서 알리 이븐 아비가 4대 칼리프로 집권할 무렵 아랍 세계는 잦은 분쟁과 반란으로 신음하고 있었는 데, 657년, 시리아를 다스리던 옴미아드가(家)의 수장 무아위야가 알리의 지도력을 의심하며 반란을 일으켜 시핀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무아위야는 코란 구절을 창끝에 매달고 중재인을 내세워 협상을 하게 되고 알리와 무아위야는 동-서로 영역을 양분하는 협정을 맺었고, 알리의 협정이 나약한 결정이었다고 실망을 느낀 추종자들은 그를 떠났으며, 그 가운데 하와리지파에서 후일 알리를 암살합니다. 알리가 암살당하자 무아위야는 대군을 이끌고 들어와 알리의 장남을 격파하고 우마이야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 때 무아위야는 본래 선출 임명직이었던 칼리프의 지위를 세습화로 고정시켰지요. 무아위야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야지드가 칼리프가 되었는데, 알리의 차남인 후세인 알리가 야지드의 승계를 부정하며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쿠파로 돌아가 봉기 계획을 세웁니다. 이에 680년 쿠파의 총독이었던 우베이둘라는 그들의 봉기를 인정하지 않고 카르발라에서 후세인 알리를 공격하여 그 일가를 괴멸시켰습니다. 마호메트의 외가 혈통이 무참히 살해당한 것에 분노한 시아파는 정식으로 수니파로부터 분파했습니다. 이것이 수니파와 시아파의 본격적인 분열의 시작입니다.
▶ 수니파와 시아파의 율법은 다른가?
‘수니’라는 말은 ‘코란과 함께 마호메트의 순나-즉 말과 행동을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시아’는 ‘알리와 그 후손들을 따르는 사람들(시아트 알리)’이란 뜻입니다. 그로부터 수니파와 시아파는 의식의 실행과, 종교관, 이슬람 율법의 해석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입니다. 수니파의 경우 코란에 입각한 삶과,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를 있는 그대로 철저히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율법주의를 고수하고 있고, 시아파는 코란의 적힌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 보다, 그 내면에 감추어진 의미를 찾아 해석하고 이행하는 가치 순응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슬람의 교리인 여섯 믿음과 다섯 개의 실천 강령 중 “하루 5번 일정한 시간에 예배드리는 것”에서 수니파는 5번을 모두 이행하는데 반해, 시아파는 융통성을 발휘하여 3번으로 압축해서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또한 시아파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하마드(마호메트)는 신의 예언자”라고 암송하는 기도문 부분에 “알리는 신의 대리인이며, 예언자 마호메트의 계승자이며, 최초의 칼리프다.”라는 구절을 추가합니다. 기도 자세도 시아파는 서있는 자세에서 두 손을 배 위에 올리지 않고, 절을 할 때에도 바닥에 곧장 이마를 대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카르발라에서 나온 작은 돌을 놓고 그 위에 이마를 댄다고합니다.
두 종파간의 차이를 뚜렷이 볼 수 있는 관습은 바로 ‘아슈라의 날’을 지내는 모습입니다. 이 날은 후세인 알리가 살해당한 이슬람력 1월의 열흘간을 의미하는데, 시아파는 후세인 알리가 쿠파의 총독에게 살해당한 것을 순교라고 보고, 그의 고통을 기립니다. 시아파 신도들은 이 날 자신의 가슴을 칼로 긋고 채찍으로 치는 행위(타으지아)를 통해 후세인 알리의 순교를 몸으로 기억하고 참회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을 통해 후세인이 중재자로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 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수니파와 시아파의 다른 종교관의 차이는 이맘(종교 지도자)에 대한 숭배 유무인데, 수니파는 코란을 완결 무결한 것으로 보고 이맘은 단순한 예배의 인도자쯤으로 여기는데 반해, 시아파에서는 이맘을 마호멧과 비슷한 반열에 놓습니다. 시아파는 홀연히 사라졌던 12대 이맘이 최후의 날에 살아 돌아와 이슬람 공동체의 단합을 이끌어주고 전 세계에 알라의 가르침을 전파한다고 여기는 종말론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이맘에 대한 믿음이 큽니다. 이란 등 시아파 국가에서 종교적 지도자가 절대적인 정치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도 이맘에게 부여하는 절대적인 권리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아파는 수니파에 비해 인물숭배 경향도 두드러집니다. 시아파 교도들은 마호메트 가문 출신 성인들에 대해 숭배의식을 행함과 동시에, 이란 등지에 퍼져 있는 시아파 지도자들의 묘소를 주기적으로 참배하며 순례합니다. 이란의 가정이나 관공서에는 알리, 후세인 알리, 그리고 카르발라 전투에 관한 사진과 그림들이 장식되어있는데, 이는 수니파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 합니다.
시아파가 수니파와 대비되는 또 다른 다른 특징은 따키아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따키아란 거짓 믿음을 의미하는 데, 이는 시아파가 수니파의 정치적, 종교적 박해로부터 시아파 신도 자신의 존재와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필요할 경우 따키아를 통해 거짓으로 자신의 신앙을 숨기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따키아는 소수종파인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관습적 안전장치인 셈이지요.
신앙의 방식과 생활 관습의 차이가 지금의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립을 부추긴 근본적인 원인일까요? 사실 시아파와 수니파는 종교관과 역사관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융합될 수 없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두 종파간 결혼의 경우 관습적인 문제는 남아있을 수 있지만, 법적인 면에서는 아무런 제약이 없고. 또한 두 종파 모두 알라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봅니다. 시아파와 수니파도 서로를 같은 무슬림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상호 존경하는 부분도 있지요. 단지 조금 다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문제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 천 년을 이어져 온 갈등, 진짜 이유는?
그저 ‘다르다’는 이유는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습니다. ‘다르다’는 경계로 구분 짓는 ‘우리와 너희’ 사이에 권력과 부의 배분에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이슬람 국가 중 몇몇 나라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 가운데 한 종파가 소수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고, 이 때 국가 내부에서의 권력 배분 문제와 소수에 대한 처우 문제 등이 발생하며, 한 국가 내에서 뿐 아니라 다른 종파를 가진 국가 간의 국경문제와 언어문제, 그리고 부의 배분에 관한 불만 등이 바로 두 종파 간 대립을 촉발시킨 근본 원인인 것입니다.
이라크의 경우에도 사담 후세인 시절 이라크의 국민 가운데 시아파가 65%, 수니파가 35%를 차지했는데 정국은 소수인 수니파 정부가 지배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다수의 시아파는 정권에 순종하는 분위기였고, 수니파 정부 역시 다수 종파라는 입지에 걸맞게 경제적 지원과 종교의식의 자유 등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1년 걸프전 이후 달라져서, 당시 수 만 명의 시아파 국민들은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였으나, 수니파 정권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되었고, 국외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타 봉기를 했다는 이유로 시아파에 대한 수니파의 보복성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융화책의 일환으로 등용되었던 시아파 관료들은 숙청되거나 암살 위협에 시달렸고, 정권에 불만을 제기한 시아파 국민들은 연이어 체포, 구금, 처형당했습니다. 10여년간 처형된 시아파 무슬림의 수가 잠정 집계 2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피의 숙청보다 무서운 것은 종교에 대한 박해였답니다. 사담 후세인은 시아파 신도들이 순교자로 칭송하는 후세인 알리에 대한 종교 행사를 금지시켰는데, 그가 숨진 곳이자 시아파의 성지인 카르발라에 대한 순례 역시 금지했습니다. 성지에 대한 순례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하는 무슬림들에게 성지 순례가 불가하다는 것은 가혹한 억압이었습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수니파 정권인 탈레반이 무너진 뒤 그동안 억압받던 시아파가 미군정의 도움으로 집권하게 되면서 종파 간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종교를 받아들이고 섬기는 방식이 ‘달라서’ 타자가 된 이들 간에 권력과 부의 배분 문제가 불거지면서 갈등의 불길은 꺼질 줄 모르고 더욱 활할 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파키스탄에서도 시아파의 종교 행사인 ‘아슈라의 날’만 되면 시아파와 수니파 간에 유혈 사태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 중동 아랍의 이슬람에 대한 종파분리 정책등과 맞물려, 그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과 갈등은 더 커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